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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 하반기 기대작 '오펜하이머'는 누구?

mmwme 2023. 8. 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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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극장가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두번째 장편 영화 '오펜하이머'의 약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8월 15일 국내 개봉). 오펜하이머는 사실 낯선 이름인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놀란 감독의 영화를 관람하기 전 미리 알아두고 가면 좋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주요한 생애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려고 합니다.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ezEuiCMjqco

 

 

대인관계에 서투른 천재, 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의 수장이 되다

 

* 출처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7622

 

1904년 4월 뉴욕에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유대계 미국인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성장, 뛰어난 두뇌와 탁월한 학습 능력으로 1922년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매년 남들보다 1.5배 더 많은 학점을 수강, 하버드 4년제 학사과정을 3년 만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오펜하이머는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물리학과의 캐번디시 연구소(Cavendish Laboratory)에 들어가 공부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연구소의 여러 사람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2년만에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 연구와 공부를 계속하게 됩니다.  오펜하이머는 괴팅겐 대학교에서도 교수의 강의가 맘에 들지 않으면 교수를 교단에서 끌어내리고 본인이 수업을 진행하는 미친 기행을 저지르기도 할만큼,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불안하고 오만한 시기를 계속해서 보내게 됩니다.

 

아무튼 괴팅겐 대학교 생활을 끝마치고 귀국한 오펜하이머는 UC버클리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어 양자영학과 천체물리학 등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1942년 미국의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 '맨해튼 계획'이 시작됩니다. 그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루즈벨트는 독일이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비공식적으로 몇 년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맨해튼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승인하게 되고, 미 육군이 그 프로젝트를 총괄하여 관리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프로젝트 총 책임자 그로브스 장군은 원자폭탄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를 하고 있던 기존 3개의 연구소 외에 실제로 원자폭탄을 설계하고 제작할 연구소를 만들었는데, 오펜하이머가 그 연구소의 총 책임자로 선정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오펜하이머는 과거 좌익정치인들에게 거액을 기부하거나 공산당원인 학자들 여럿을 친구로 두고 있는 등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고 있어 선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능력을 의심치 않았던 그로브스 장군의 뚝심으로 연구소를 맡게 됩니다.

 

오펜하이머는 이후 노벨상 수상자들도 포함된 약 6천여 명의 연구진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맨해튼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되고, 이렇게 개발된 원자폭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에 떨어지면서 태평양 전쟁을 끝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 핵무기 회의론자로 돌아선 오펜하이머

 

* 출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808500044

 

히로시마와 나사사키에 떨어진 두 차례의 원자폭탄으로 수 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대량으로 죽고 피폭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카미카제, 집단자결, 점령지에 대한 무차별한 학살 등 인간의 생명을 단순히 도구로 여기는 일본군 수뇌부의 정신나간 행동에 대한 '응징'의 개념도 있었습니다. 다만 어쨌든 본인이 개발한 핵무기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죽거나 다친 참상을 목격한 오펜하이머는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이후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에 대해 반대했고, 특히 원자폭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수소폭탄의 제조에 대해서는 격렬한 반대 의견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과거 좌익사상에 한 발 정도 담근 이력, 미국의 핵무기 계획에 대한 반대, 1949년 소련의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 성공 등이 맞물리면서 오펜하이머는 빨갱이 공산주의자, 소련의 스파이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말년 오펜하이머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물리학에 대한 연구와 논문 작성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꼴초 수준의 애연가였던 오펜하이머는 결국 1965년 후두암 진단을 받고 2년 뒤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본인의 뛰어난 역량으로 개발된 새로운 차원의 무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걸 본 오펜하이머는, 후에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가 겪었던 정신적인 고민과 고뇌가 어느 정도 깊은 수준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킬리언 머피 주연 '오펜하이머'

 

* 출처 https://www.huaf.kr/?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ODt9&bmode=view&idx=15100222&t=board&category=301P6e2J1R

 

이렇듯 다사다난했던 오펜하이머의 삶을 전기 형식으로 다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8월 15일 국내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대표 연기파이자 인셉션, 덩케르크 등에서 놀란 감독과 작품을 함께한 바 있는 킬리안 머피가 오펜하이머 역을 맡았다고 하는데요.

 

글로만 보거나 들었던 이론적인 내용을 시각화하는 데 있어서는 전세계 최고라고 봐도 될 놀란 감독이 과연 원자폭탄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지 기대가 되면서도, 덩케르크와 같이 너무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국내외 평론가 점수는 나쁘지 않다고는 하는데, 그것과 대중들이 보는 영화의 재미는 또 별개의 문제니깐 뚜껑은 열어봐야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하반기 최대 기대작 '오펜하이머'와 관련하여 그는 누구이고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간단하게 살펴봤습니다. 침체된 영화관 시장에 단비같은 작품이 될지, 오펜하이머와 한국의 상징적인 연결고리 '8·15'에 개봉하는 만큼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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