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계 악마의 재능, 닉 키리오스(Nicholas Kyrgios)
어느 프로스포츠든 한두명씩은 악마의 재능이 있습니다. 축구계에는 이탈리아의 카사노, 농구계에는 요즘 한참 문제가 되고 있는 멤피스의 자 모란트 등이 대표적이죠. 테니스계도 예외는 아닌데, 오늘은 테니스계 악마의 재능으로 오랫동안 군림(?)해오고 있는 호주의 테니스 선수 '닉 키리오스(Nicholas Kyrgios)'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압도적인 강 서버
키리오스는 193cm의 큰 신장과 흑인 특유의 신체능력을 잘 이용하는 강서버입니다. 키리오스의 서브 모션을 슬로우로 보면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는데요. 첫 번째로 대부분의 선수들이 공을 아주 높이 토스했다가 떨어지는 공을 타격하는 것과 달리 키리오스는 공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바로 공을 타격해버립니다.
일반적인 포핸드보다 라이징볼을 칠 때 더 스피드가 나는건 '공의 힘이 살아 있을 때' 타격을 하기 때문인데, 서브도 마찬가지입니다. 안그래도 큰 키에서 강한 서브가 나올텐데, 올라가는 공을 타격하니 더 강하고 반박자 빠른 서브가 나올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일반적인 포핸드보다 라이징볼을 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처럼, 올라가는 공을 서브로 넣는 것도 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키리오스의 공에 대한 감각이 남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서브 메커니즘을 실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록으로도 나타나는데요. 키리오스의 서브 에이스 비율(Ace %)은 18.2%로 역대 선수를 모두 통틀어도 8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브게임 승률도 무려 88.8%에 달해, 이것도 역대 8위에 해당합니다. 웬만해선 서브게임은 깔고 간다고 봐도 되는 기록인거죠. 브레이크 위기를 극복한 비율(Break Points Saved %)도 67.2%로 역대 12위. 하여튼 서브나 서브게임 관련한 기록은 역대로 봐도 최상위권에 위치한 게 바로 키리오스입니다.
쌔리 후리고 갈기는(??!) 포핸드, 그리고 소녀 백핸드
표현이 좀 요상합니다만, 키리오스는 '냅다 고마 쌔리는' 포핸드를 결정구로 자주 사용합니다. 아래 영상을 봐도 알겠지만 진짜 쌔리고 후린다는 표현이 딱 맞는 엄청난 포핸드 위너를 종종 선보입니다. 속도가 시속 185km를 넘는다고 하니 웬만한 프로선수의 퍼스트 서브보다 빠른 포핸드를 치기도 한다는 거죠. 반면 우리가 흔히 축구 선수들의 슛이 약할 때 '소녀 슛' 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백핸드 스트로크는 참 조신하게 치는 편입니다. 저랑 비슷하군요(?!)
오은영박사의 금쪽 솔루션이 필요한 금쪽이 키리오스
경기가 마음처럼 풀리지 않으면 승질머리가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금쪽이 키리오스입니다. 주체가 안 되는 승질머리 때문에 각종 기행을 선보였고, 그 결과 총 상금액은 보잘 것 없는 키리오스지만, 총 벌금액은 현역 선수중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2022년 7월 기사에 따르면 키리오스가 그 당시 기준 낸 벌금의 총액이 호주 달러 기준으로 무려 45만 2천 달러라고 합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4억원이네요.
벌금을 무는 루트도 참 다양합니다. 리턴도 받지 않고 그냥 나가버리기 같은 게임 반쯤 포기하기, 상대선수 여자친구가 바람났다고 루머 퍼뜨리기, 생수병으로 마스터베이션, 관중한테 욕하기, 질 것 같으니깐 심판 허락없이 화장실 간다고 나갔다가 라켓 부수기 등등. 하여튼 지 승질머리를 못 이겨먹어서 각종 기행을 벌이고 그걸로 알차게 벌금을 때려받습니다.
다른 선수가 서브, 위너, 포핸드, 발리 하이라이트 영상이 만들어질 때 키리오스는 기행 하이라이트 영상이 만들어지니, 뭐 말 다했습니다. 키리오스의 기행을 모아놓은 꿀잼 영상 한 번 보시죠.
어쩌면 여린 마음의 소유자?
많은 레전드나 선배/동료 선수들이 키리오스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정신 좀 차리라고 말이죠. 테니스 레전드 존 매켄로는 키리오스의 행동을 두고, '최선을 다했다가 지는게 두려워서 저러는 거다' 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진짜 오은영 박사님의 진단을 한 번 받아보게 하고 싶네요 ㅎㅎㅎ
그래도 정신만 차리면...
테니스 선수로서 완벽에 가까운 피지컬, 키 큰 선수 답지 않은 스킬, 강력한 서브와 네트 앞 섬세한 발리 기술까지. 사실 테니스를 못 할 이유가 없는 키리오스입니다. 어쩌면 키리오스야 말로 테니스에서 '멘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선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멘탈만 잡히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게 키리오스입니다.
이제 나이도 30대를 향해 가고 있는 만큼, 철 좀 든 키리오스가 과연 남은 선수생활 동안 어떤 테니스와 성적을 기록하게 될 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골치아픈 선수이지만 테니스 팬 입장에선 저런 빌런이 한 명 정도 있어줘야 또 테니스 판이 재밌게 굴러가지 않겠습니까?! 적당히! 정신차리자 키리오스!